쇼핑. 누군가에겐 취미고 특기(?)겠지만 누군가에겐 고역이다. 기자는 후자에 가깝다. 옷이나 신발이 해져 쇼핑의 필요성을 느껴도 귀차니즘 탓에 미룰 정도. 나이가 들수록 옷빨이 안 받으니 더 심해진다. 이럴 때 내가 원하는 상품을 옆에서 콕 집어 골라준다면!

그래서 도전해봤다, 스마트 쇼핑. 롯데백화점의 로봇 쇼핑 도우미 ’엘봇’, 3D 가상피팅 서비스, 3D 발 사이즈 측정기는 나의 백화점 가는 발걸음을 가볍게 해줄 수 있을까.

▶로봇 쇼핑 도우미 ’엘봇’
▷배고픈데 간식만 안내해 아쉬워

첫인상은 ’에계~’였다. 허리 높이에 불과해 찾기도 힘들었다. 이렇게 작은 녀석이 과연 도움이 될까. 허리를 굽히고 들여다 보니 이놈, 목소리는 우렁차다.

고객님 안녕하세요~ 저는 엘봇이라고 해요. 저는 오늘 컨디션이 아주 좋아요. 지금 고객님의 기분이 어떤지 궁금해요. 화면의 버튼을 클릭해서 대답해주세요~.

짧은 팔을 이리저리 흔들며 말을 건네는 엘봇. 녀석의 애교에 이내 마음이 누그러진다.

화면에는 ’배고파’ ’심심해’ ’상담원 연결’ 3가지 선택지가 떠 있다. 마침 출출하던 차. ’배고파’를 누르니 ’인기 톱3’ 매장과 ’추천 베스트3’ 매장 리스트가 뜬다. 그런데 웬걸. 모두 커피전문점, 베이커리, 아이스크림, 디저트 매장뿐이다. 흠…난 밥이 먹고 싶단 말이다.

다른 선택지가 없어 ’베이커리’를 클릭하니 메뉴와 가격, 그리고 매장 위치를 지도와 함께 보여준다. 동선이 복잡한 백화점에선 꽤나 도움이 될 듯하다.

’심심해’도 클릭해봤다. ’3D 가상피팅 체험하기’와 ’픽업데스크 알아보기’ 버튼을 보여준다. 그래, 난 이게 궁금했어. ’3D 가상피팅’을 누르니 화면에 커다란 눈망울을 깜빡거리며 엘봇 얼굴이 나타난다. 고객님, 제가 안내해드릴게요~라며 갑자기 2m 옆에 있는 가상피팅존으로 천천히 이동하는 엘봇. 음…친절한 건 좋은데 2m 옆은 굳이 안내 안 해줘도 될 것 같아 엘봇.

그런데 이 녀석, 아무 때나 볼 수 없다. 오전 11시~오후 1시, 오후 4~6시까지 하루 2회, 4시간만 이용 가능하다. 2시간이 넘으면 배터리가 떨어지기 때문이란다.

▶3D 가상피팅
▷순식간에 여러 벌 착장 Good~

어쨌든 엘봇의 안내(?)로 찾아왔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안 그래도 옷을 사러 갈 때마다 고민됐다. 옷을 입어보고 싶긴 한데, 입어보긴 귀찮은…. ’대충 맞겠지’ 근거 없는 자신감에 피팅도 생략하고 샀다가 낭패 본 경우가 적잖다. 그런데 옷을 갈아입지 않고도 가상피팅을 해볼 수 있다니. 내가 찾던 쇼핑 도우미가 여기 있었군.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화면 앞에 서서 성별과 옷 종류(상의, 하의, 재킷)를 선택하고 점선으로 보이는 실루엣에 몸을 갖다 대면 끝. 손을 휘저어 ’다음’ 버튼을 누르면 화면 속 옷들이 내 몸에 착착 ’입혀진다’. 화면 왼쪽 아래엔 착장한 뒷모습까지 3D로 보여 돌아볼 필요도 없다. ’이 옷을 입으면 이런 느낌이겠군.’ 클릭할 때마다 변검처럼 샥샥 옷이 바뀌니 정말 편하다. 불과 10초 만에 10벌의 옷을 입어볼 수 있었다. 하단에는 옷 브랜드와 가격, 매장 위치를 보여줘 마음에 들면 어디 가서 살 수 있는지도 바로 알 수 있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 옷도 움직여 활동할 때 모습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거…뭔가 아쉽다. 일단 카메라가 허리 높이에 있어 ’얼짱’ 각도의 정반대로 찍힌다. 투명한 천장 사이로 자연채광이 되니 조명도 역광이다. 피팅은 각도와 조명이 생명인데…. 가상피팅을 하면 할수록 참 못나 보이는 나. 아무래도 가상피팅기 설치 담당자 소속은 패션팀이 아닌, IT팀임에 틀림없다.

가상피팅기로 성인이 입을 수 있는 옷은 80개 브랜드 262개 품목. 아동복은 80벌 정도다. 남성과 여성의 상의, 하의, 재킷은 각각 평균 45개가 채 안 되는 셈. 옷을 내가 고르기보단 미리 준비해서 골라준 것만 입을 수 있다는 점도 살짝 아쉽다.

이에 대해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증강현실(AR) 기술을 이용해 의상을 만들다 보니 비용 문제로 옷 종류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대신 계절에 따라 잘 팔리는 옷 위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 새로운 쇼핑 경험을 할 수 있어 고객 호응도가 높다. 지난 4월 한달간 2400여명이 가상피팅 서비스를 이용했다고 설명했다.

▶3D 발 사이즈 측정기

▷잴 때마다 결과 달라 신뢰도 ’뚝’

이건 뭔가 싶었다. 자기 발 사이즈 모르는 사람도 있나. 굳이 3D로 측정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은 기계가 비치된 매장 앞에 가자마자 풀렸다. ’맞춤 구두’를 파는 수제화 전문점이었던 것. 평생 맞춤 구두라곤 신어본 적 없는 기자가 과문했다.

생각해보니 아주 딱 맞는 신발을 신어보고 싶은 욕구가 든다. 보통 신발은 기성품이어서 늘 조금은 헐겁거나 조이기 마련이니까. ’내 정확한 발 사이즈는 과연 몇일까’ 기대감을 안고 측정기에 올랐다.

측정 버튼을 누르니 두둥. 불과 2초 만에 결과가 나온다. 구두를 맞추려면 과거에는 A4용지에 발을 올려놓고 선을 따라 그렸다는데. 일단 속도 하나는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애꿎은 직원들이 손님의 발 냄새를 안 맡아도 되니 좋을 듯하다.

내용도 풍성하다. 단순히 발 사이즈만 보여주는 게 아니다. 뒤꿈치부터 발가락까지의 길이, 발볼 넓이와 둘레, 발바닥 아치 높이, 발뒤꿈치 넓이, 발등의 높이와 둘레까지 알려준다.

기자는 왼발이 260㎜, 오른발이 255㎜로 나왔다. 둘 다 265㎜로 알고 있었는데, 작게 나온 것보다 ’짝발’이란 게 더 충격적이다. 그런데 발볼, 발뒤꿈치 등 다른 사이즈는 오히려 오른발이 왼발보다 조금씩 크다. 의아함에 다시 재봤다. 그러자 이번엔 왼발과 오른발 모두 255㎜란다. 왼발의 뒤꿈치부터 발가락까지의 길이도 이전보다 3㎜나 짧아졌다. 나이를 먹으면 체구가 작아진다지만, 불과 5분 만에 이만큼이나 작아졌을 리 없다. 신뢰도가 뚝 떨어진다.

맞춤 구두 매장 직원들이여, 아무래도 당분간은 손님 발 냄새를 더 맡으셔야 되겠습니다.

[노승욱 기자 inyeon@mk.co.kr / 사진 : 윤관식 기자]

http://v.media.daum.net/v/20170605093804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