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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대응 로봇, 암스트롱
박종원 (한국원자력연구원 로봇응용연구부)





1986년, 구 소련의 한 소도시 밤하늘에 레이저쇼와 같은 현상이 발생했다. 평소에 나타나지 않는 기이한 현상이었기에 지역 주민들은 하늘에 펼쳐진 경이롭고 아름다운 장면을 구경하기 위해 가족단위로 삼삼오오 다리위로 모여들어 감상했다.

이 초 자연적 현상은 인근에 위치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면서 대기중으로 누출된 대량의 방사성 물질의해 발생했다. 발전소 폭발과 방사능 누출이라는 엄청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사고 상황은 비밀에 부쳐졌고, 관련 정보가 지역 주민에게는 전달되지 않았다. 또한 방사능 낙진과 방사선으로 인한 인체 영향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탓에 속수무책으로 고준위 방사선에 노출되는 피해가 일어났다. 구경하던 주민들은 후에 방사선 피폭에 따른 후유증에 시달렸고, 이 다리는 죽음의 다리라고 불리게 되었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는 당시 안전장치를 해제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실험을 진행하다가 비정상적인 핵 반응으로 원자로가 폭발했다. 폭발로 인해 발전소 지붕은 날라가고, 감속재로 쓰였던 흑연 조각이 지붕을 뒤덮었다.

당시 소련에서는 초유의 방사능 사고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고민했다. 그 중 하나는 최첨단 기술인 로봇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로봇을 투입할 경우, 인명피해를 줄이고 고방사능 물질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달 탐사를 위한 준비중이던 로봇, 서독에서 구해온 로봇 등을 가장 방사선 준위가 높은 발전소 지붕의 흑연을 치우는 작업에 투입했다.

투입된 로봇들은 기대와 달리 곧 작동불능상태에 빠졌다. 방사선으로 인해 민감한 전자 회로들이 타버렸고, 카메라도 열화 되여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당국자들은 사고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기위해서 고장 나지 않는 로봇을 활용할 계획을 세운다. 바로 바이오 로봇이다. 바이오 로봇은 당시 군인 및 발전소 인부를 부르던 말로, 실제 로봇의 역할을 대신해 사고지역에 투입된 사람들을 일컬었다. 총 3500명 정도의 바이오 로봇은 조악한 화생방보호의와 납조끼를 돌려 입으면서 고방사성 구역에서 흑연 조각을 치우는 일에 투입됐다. 즉, 원자력 재난사고에 기술이 해결하지 못하던 일을 결국 사람의 희생을 통해 해결해야만 했던 것이다.








2011년 일본 도호쿠 지방 태평양 해역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을 감지한 원자로는 안전을 위해 자동적으로 멈췄고, 비상발전체계가 작동됐다. 하지만 몇 분 후 15m 높이의 쓰나미가 방파제를 넘어 원전을 덮쳤고, 후쿠시마 원전 전체가 침수됐다.

원자력 발전소는 원자로의 열을 이용해 발전을 하는 형태인데, 그 구조상 지속적으로 차가운 물을 이용해 냉각을 시켜줘야 한다. 하지만 쓰나미로 인한 침수로 전력이 끊어졌고, 원자로의 온도는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원자로 온도가 1200도까지 상승하면서 방호벽이 녹아내렸고, 결국 수소 폭발을 하면서 방사능물질이 대기중으로 유출되기 시작했다.





당시 생방송으로 사고 상황이 중계되면서 일본의 사고 대응에 대해 전세계적 관심이 집중됐다. 일본은 체르노빌 사고가 발생했던 구 소련과 달리 아시모를 비롯한 최첨단 로봇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자연 재해가 빈번한 국가인 만큼 다양한 재난 로봇에 대한 연구를 오랫동안 축적해 왔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로봇을 투입해 사고 상황을 수습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그러한 일을 발생하지 않았다. 로봇강국 일본임에도 불구하고 원자력발전소 폭발과 같은 실제 재난 현장에서는 바로 쓰일 수 있는 기술을 준비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골든타임을 놓쳤고, 추후에 미국 군사용 로봇들이 투입되어 사고 현장을 모니터링 할 수 있게 되었다.








전세계에서 후쿠시마의 참상을 지켜보던 로봇연구자들은 수십년간 개발해온 재난 로봇이 실험실이 아닌, 사고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깨닫았고, 이를 계기로 실제 활용가능한 재난 대응 로봇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 (DARPA) 에서는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 인간대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로봇의 개발을 목표로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 (DARPA Robotics Challenge)를 개최하였다. 대회에 참가한 로봇들은 가상 원전사고의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차량운전, 문 열기, 냉각수 밸브 잠그기, 벽 뚫기 등 8가지 임무를 수행했다. 세계 각국의 24개 참가팀이 참여한 다르파 로보틱스 챌린지를 통해 로봇 기술이 혁명적으로 발전하고 재난 로봇에 대한 가능성을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대회이후 5년 여가 지난 지금, 현재의 로봇기술은 실제 재난 현장에 투입할 만큼 성숙됐을까? 여전히 실제 재난 현장에서 로봇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로봇의 구조적 한계에 있었다.

로봇은 재난사고에 사용될 만큼 충분히 강하지 않았다. 금속으로 만들고 강력한 모터와 감속기로 구동되는 로봇이 힘이 세지 않다는 사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사실이다. 사람 팔 크기의 로봇은 대략 3~10kg 수준의 무게만 핸들링 가능하다. 따라서 원자력 발전소의 두꺼운 강철 문을 열거나, 수 m 수준의 고강도 콘크리트에 착암기로 구멍을 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 한 것이다. 재난 사고 현장에서는 사고로 훼손된 문 개방, 잔해물 처리, 산업용 밸브 조작, 위험물 이송, 인명 구조, 소방수 분사 등 큰 힘을 가지고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는 작업이 대부분인데, 힘이 약한 로봇으로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는 원자력 사고상황에서 무인대응을 하기 위한 로봇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암스트롱(ARMstrong: Accident Response Manipulator) 로봇은 2018년부터 개발 중이며 원자력 사고 발생시 사람을 대신해 현장에서 사고를 수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암스트롱은 재난 상황에서 요구되는 고하중 작업을 수행하기 위해 기존에 개발되던 모터와 감속기 기반의 로봇 기술과 달리, 중장비에 활용되는 유압기술을 채택했다. 사람크기의 로봇에 유압 기술을 적용하기 위해 유압 모터와 유압 실린더를 소형화 하였고, 장시간 큰 출력을 생성하기 위해 배터리가 아닌, 가솔린 엔진을 장착했다. 또한 섬세한 제어를 위한 제어기 기술도 새롭게 개발했다. 암스트롱은 한 팔에 100 kg의 물체를 들 수 있으며, 양팔 작업 시 200kg 수준의 드럼통도 운반 가능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재난 로봇은 사람의 동작을 모사할 수 있고 다양한 작업도구를 활용 가능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인체를 모사한 로봇 팔 구조를 설계하였다. 이로써 암스트롱은 사람 작업자의 동작을 흉내 낼 수 있게 되었다.

곡괭이를 이용해 땅을 파고 삽으로 모래를 주머니에 담을 수 있다. 회전하기에 큰 힘이 걸리는 산업용 밸브도 조작할 수 있고, 모래주머니를 쌓거나 방사능 폐기물을 드럼 통에 담아 안전한 곳으로 이송도 가능하다. 통신을 복구하기 위해 케이블을 연결하거나 랜선을 꽂는 섬세한 작업도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사고 현장의 험로를 이동하기 위한 무한궤도를 탑재하였고, 200kg 이상의 물체를 끌어서 견인할 수 있다. 허리에 탑재한 리프트를 활용하여 바닥에서부터 2.2 m 높이의 천장에 이르는 영역까지 닿을 수 있어 높은 위치에서의 작업도 가능하다.





재난 로봇은 구조가 복잡하고 정형화되지 않은 다양한 임무를 임기응변으로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따라서 로봇의 조작이 간편하고 쉬워야 한다. 특히 재난 현장에는 로봇 개발자가 아닌, 재난 전문가가 로봇을 조작해야 하므로 직관적인 제어 방식은 필수다.

암스트롱은 이러한 요구에 맞추어 작은 인형 모양의 조작장치, 마스터를 개발하였다. 마스터는 암스트롱과 구조가 같고 크기가 축소된 형태로써, 각 관절의 센서를 읽어 로봇에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마스터는 키보드나 마우스로 일일이 각 관절의 움직임을 명령할 필요없이 마치 인형 놀이를 하듯이 조작하면 로봇이 제어되는 방식이다. 따라서 조작자는 전문적인 관련 지식 없이도 파이프를 조립하거나 폐기물을 분류해서 통에 담는 등의 복잡한 제어가 가능하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는 원자력사고를 대비하여 대응능력을 제고하고, 주민 보호와 사고 수습 점검을 위한 방사능 방재훈련을 매년 2회 이상 실시한다. 2020년 8월, 한국원자력연구원내 한 시설에서 사고가 발생하고, 이로 인한 방사능 누설이 발생한다는 시나리오로 방재 훈련이 실시되었다. 암스트롱은 방사능 물질이 건물 외부로 누출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30 kg 무게의 밀봉체를 건물 외부에 부착하는 임무를 맡았다. 암스트롱은 밀봉체를 들고 건물로 접근하여 누출이 발생한 자리에 빈틈없이 밀봉체를 끼워 넣음으로써 목표했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2020년 10월에는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에서 방사능 물질이 누출되는 시나리오로 방사능 방재 훈련이 실시되었다. 이 훈련에서 암스트롱은 외부로 누출되는 방사능 물질을 차단하기 위하여 스프레이 폼을 문틈으로 분사, 문틈을 빠르게 메꿈으로써 10여 분 만에 출입문을 밀봉하는 목표를 달성했다.





원자력 재난사고의 경우 실제와 같은 재현이 어렵기 때문에 암스트롱은 주기적으로 방재 훈련에 참가함으로써 기술적 실효성을 검증하고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고 있다.




암스트롱은 현재 로봇의 양방향 제어 시스템 고도화를 위해 극한환경 로봇 디지털 트윈 개발 및 운용성 검증, 머신러닝 기반 최적 제어기 개발, 사용자 친화형 마스터 디바이스 개발, 실시간 작업을 위한 저 지연 고 응답성 제어 시스템 개발 등을 통한 연구 개발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암스트롱 로봇은 기존의 로봇으로 불가능했던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로봇의 활용영역을 확장, 확보한 기술을 제조, 건설, 물류, 발전, 정화 및 조선과 같은 타 산업 분야로의 파급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한 후쿠시마와 같은 원자력 재난상황에서 로봇을 활용한 적극적 사고대응을 통한 국가 안전 증진하고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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